사사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사무엘은 하나님의 충실한 종으로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으나, 그의 아들들에 대해서는 사무엘상 8장에서 이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사무엘 아들들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라는 것은 의아한 일입니다. 사무엘은 엘리 가문에 임한 하나님의 징계를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지켜본 자입니다. 엘리 가문이 몰락한 직접적인 원인은 엘리 아들들의 악행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던 사무엘은 자신의 아들들이 올바르게 자라도록 남달리 신경을 썼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무엘 아들들은 사무엘과 달리 어째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하게 되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를 되돌아 보니 사무엘 아들들이 아버지와 달리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났다가 징계를 받고 용서를 얻은 하나님께 돌아오지만 다시 하나님을 떠나는 과정을 오랜 세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반복해 왔음을 어렵지 않게 있습니다. 아버지 세대와 자녀 세대가 하나님에 대해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은 흔한 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신명기 6장에서 말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그것을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뜨거운 마음이 식지 않기 위해 그리고 부모의 믿음이 자녀에게 끊기지 않고 이어지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신명기 말씀이 너무나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슴을 울리는 교훈과 감격을 누리더라도 그것을 곱씹으며 되새기는 노력이 없다면 교훈과 감격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온갖 기적과 구원의 손길을 체험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올바르게 서지 못했던 이유는 아마도 교훈과 감격을 되새기며 모든 의지를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처럼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수고와 인내를 감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신명기 6장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겠습니까.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수고를 치르더라도 우리가 붙들어야 삶의 목표입니다. 더불어 우리 자녀들에게도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 지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실수를 그대로 반복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것입니다.


자녀들이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많은 것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부모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찾아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자라도록 많은 것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부모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같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세상 아니라 하나님과도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돌봐주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부모들의 책임이 아니겠습니까.


엘리 아들들의 타락으로 인해 엘리 가문에게 임한 하나님의 징계를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지켜본 사무엘이었지만, 정작 사무엘은 자신의 아들들이 타락한 것을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습니다. 사무엘 아들들의 악행은 하나님의 통치 대신 사람의 통치를 원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에 힘을 실어 주는 빌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충직하게 살았던 사무엘이었지만 사무엘상에 짧게 언급된 그의 말년의 삶은 어쩐지 쓸쓸해 보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로 올바르게 자랄 있도록 우리가 부모로서의 사명을 다할 있기를 바랍니다. 자녀에게 올바른 본을 보일 있도록 부모된 우리 먼저 예수님을 따르며 분을 닮기를 소망합니다. 길이 수고와 인내를 요구하는 길이더라도 가야할 길을 묵묵히 가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