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장년회 헌신예배 말씀을 통해 느낀점을 나눕니다. 특히 청장년층 교인들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에 더욱 마음을 쏟길 바라며 글을 남깁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떨기나무에 붙은 불꽃으로 모세에게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떨기가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불이 생기려면 재료가 타야 하지만 떨기에 임한 불꽃은 재료를 태우지 않았으니 불꽃은 재료와 무관하게 스스로 존재하는 불꽃이었습니다. 과연 불꽃은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시기에 우리와 차원이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생명이 주어졌고 누군가에 의해 정해진 섭리를 따라 살다가 죽는 존재입니다. 이처럼 무언가에 전적으로 의존적인 존재인 우리가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점은 확실합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분에게는 우리가 상상할 없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분에 의해 지어진 존재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거나 것을 것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바로 사망에 매였던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 속하도록 우리를 구원한 분의 능력이었습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신 하나님이 창조의 놀라운 능력으로 우리를 만드셨고 새롭게 하셨기에 우리는 분을 두려운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처음부터 같이 있었다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우리의 차원으로 내려오셔서 고난과 수치를 받은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죽음의 이유는 다름 아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기 위해 비싼 대가를 지불할 것을 감수하셨으니 하나님은 우리를 특별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분임에 틀림 없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며 실제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에게도 하나님을 역시 아버지로 부르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아버지와 자녀 그리고 형제 관계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아울러 예수님과 형제 관계가 되는 셈입니다. 우리와 차원이 다른 분이 우리를 분의 가족이라고 불러주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낮은 자를 포용하는 관대한 분임에 틀림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아들을 희생하셨고 자신의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를 가족으로 불러주셨기에 우리는 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깨달은 만큼만 하나님께 순종할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거대한 사랑을 깨닫고 이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사명을 찾는 것도 감당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생동안 하나님을 묵상하고 알아가는 일에 결코 소홀해서는 안됩니다


특별히 청년들에게 고합니다. 세상에 마음을 두고 있다면 하나님께 마음을 돌리십시오. 인생은 쏜살같이 지가나는 화살과 같다고 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깊이는 측량할 없으며 사람이 평생을 쏟더라도 깊이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시라도 빨리 하나님을 알아가고 순종하는 일에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함께 하나님의 풍성하신 능력과 사랑에 깊이 빠져들기를 소망합니다.   능력과 사랑의 깊이를 깨닫고 예수님이 보이신 순종의 본을 배울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같은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 우리 일생의 목표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