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바쁜 세상을 살면서 나와 하나님 사이에 기도도 짬짬이 틈을 내서 해야하는 현실속에서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교제할 때에 어떤 말을 해야하고, 또 어떤 말을 들어줘야 하는지 항상 고민합니다.

왜냐하면, 세상 살아가면서 “말"은 사람을 기쁘게도 하지만, 지치게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에대해 우리의 성경 중 잠언에서 몇가지 우리들에게 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http://biblenara.org/onbible/onbible100.htm 에서 출췌


솔로몬 잠언들  중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27:10)."

  고대의 관습상 아버지의 친구는 자기 가족 어른과 같이 대접을 받았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라고 하는 말은 이웃 어른들을 잘 대접하고 그들은 자기 부모처럼 대하라는 것을 말한다. 이 구절의 핵심은 형제에게 도움을 청하지 말라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라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가까운 이웃이 때로는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보다 더욱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평상시에 이웃들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할 필요가 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27:17).물에 비취이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과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취느니라(27:19)."

  두 친구 사이의 건설적인 토론이나 인격적인 친교는 서로 상대방의 인격에 성장을 가져온다. 본문에서 '얼굴'은 양쪽의 인격이나 지적 능력 등을 나타낸다. 우리가 쇠로 연장을 만들 때에 쇠망치로 두들겨서 만든다. 그러므로 철이 철을 날카롭게 만드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의 인격을 만드는 일도 다른 사람이 사용된다. 사람들은 서로 사귀고 돕고 싸우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서로의 인격을 형성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인간 관계는 사람의 인격을 만드는 훈련장이라고 할 수 있다. 물에 얼굴이 비취는 것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췬다. 본문에서는  두 번 언급되고 있는 '한 사람'을 동일 인물로 보느냐 다른 인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1) 동일 인물로 볼 경우: 맑은 물에 얼굴이 비추이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비추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한 자기 인식에 도달하려면 자기의 마음을 진지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 경우 사림들은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깊이 성찰함으로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 된다.

 2) 다른 인물로 볼 경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태도를 관찰할 때에 자기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알고 있는 내 모습과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객관적인 내 모습은 큰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를 보고서 나 자신의 객관적인 모습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감정 있는 자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에는 궤휼을 품나니,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라. 궤휼로 그 감정을 숨길지라도 그 악이 회중 앞에 드러나리라(26:22-26)."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마치 특별한 음식과 같다. 별식(미틀라하밈)은 '한입거리 맛있는 음식'이나, '상처'란 의미이다. 남을 비방하고 험담하는 말은 한입에 먹을 수 있는 간편하고도 맛있는 음식과 같지만, 남에게 큰 상처를 남길 수 잇다는 것을 동시에 암시해주고 있다. 

70인역(LXX)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한다.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자의 말은 부드러우나 그 말은 뱃속 깊은 곳을 치느니라.' 악한 마음을 가지고 온유한 척 꾸며대는 말은 은을 도금한 토기와 같이 가증되다. 온유한 입술(세파타임 돌레킴)은 '불타는 입술'이란 말이며, 이는 형식적으로만 애정이 넘치고 따뜻한 태도로 하는 말을 의미한다. 이런 입술을 가진 자가 악한 마음을 숨기고 있다면 그는 위선자임에 분명하다. 이런 자는 낮은 은을 입힌 곧 '은 찌끼를 입힌' 토기와 같다. 토기에 은 찌끼를 입히는 것을 밝은 광채를 내게 하기 위함일 뿐 그것 자체가 토기를 고가품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애정이 넘치는 말과 행동 이면에 악한 음모를 숨긴 대표적인 사례는 가룟 유다가 로마 군병을 이끌고 주님을 만났을 때의 장면이다(마 26:47-49). 성도들은 겉과 속이 다른 말을 해서도 안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자를 구분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은 부드럽고 매력적인 말투로 치장했더라고 악인의 마음은 가증한 것, 곧 혐오감을 주는 것으로 충만해 있다는 말이다. 한편 이는 일곱 귀신에 사로잡힌 자를 연상시키는  표현이다(마 12:45; 막 16:9). 

다른 사람을 속이고 모함하는 일은 처음에는 쥐도 새도 모르는 것처럼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결국 시일이 지나면 그 흑막이 반드시 벗겨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러한 외식적인 말을 극히 삼가야 한다.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 거짓말하는 자는 자기의 해한 자를 미워하고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키느니라(26:27-28)."

  악인들은 타인에게 불행을 안기기 위하여 깊은 구덩이를 파고 돌을 굴리는 것처럼 열심히 일을 한다. 전자는 덫을 설치하고 후자는 밑으로 굴리기 위하여 꼭대기에 돌을 굴려 올리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삿 9:53; 삼하 11:21). 덫을 설치하는 일이나 산 혹은 성벽 꼭대기로 돌을 끌어올리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악인들은 이렇게 어렵게 남을 해치려고 모의를 하지만 결국 그들은 자기가 놓은 덫에 자기가 치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두고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하만(에 7:10)과 다니엘의 대적들(단 6:24-28)을 들 수 있다. 

거짓말하는 자는 자기의 해한 자를 미워하고 아첨하는 입술은 패망을 일으킨다. 거짓말하여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상처를 입힌 만큼 자신도 상처를 입기 때문에 결국 자신을 해치는 자가 된다. 그리고 남에게 악을 행한 일은 도리어 자신에게도 해가 된다.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27:12)."

  슬기로운 자는 '재앙'('라아': '악')을 보면 숨고 그것을 미리 피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악을 보고도 그것을 피하거나 대비하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나아가다가 마침내 큰 해를 받게 된다. 슬기로운 자('아룸')는 '신중한 자'를, 어리석은 자(페타임)는 '단순한 자'를 말한다. '아룸'은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하며, '페타임'은 '악을 분별할 수 없는 사람'이다. 

성도들은 지혜를 가까이 함으로써 악을 분별하고 거기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